[다정한 시선 시즌 4 #16] 2025.04.28 파머스 마켓 셀러 되어 보기 |
|
|
타지에서 살수록 다짐하게 되는 건 ‘여행하듯 살자’라는 모순적인 마인드다. 누군가에겐 한 번쯤 여행하고 싶은 버킷리스트가 뉴질랜드겠지만, 이곳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똑같은 루틴이 반복될 뿐이다. 3살 로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며 매일 밤 기진맥진해서 잠드는 터라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볼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오늘뿐이고 내가 지금 다시 오지 못할 곳에 살고 있다면…’ 즉, 내가 지금 여행 중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다음에 하지 뭐.’라는 생각이 싹 사라지게 된다. 평소에 한 번쯤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파머스 마켓 셀러 되기’였다.
뉴질랜드는 한국에 비해 면적은 2배가 넘지만, 인구수는 10분의 1에 불과하다. 인구밀도가 낮아서인지 한국과 같은 상설 재래시장은 없고, 지역마다 토요일 혹은 일요일에 ‘파머스 마켓’이라는 이름의 장이 열린다. 지역 생산자들이 갓 구운 빵과 파이, 신선한 야채, 과일에서부터 블루베리 잼, 와인과 같은 지역 특산물을 팔고, 지역 창작자들이 직접 만든 유리 공예품, 은금속 액세서리, 그림, 조각품에서부터 직접 뜬 뜨개질 옷과 인형, 핸드메이드 상품들을 판매한다. 제품을 만든 사람이 직접 물건을 팔다 보니 자부심과 애정이 느껴지고, 더해서 같은 지역에 사는 이웃이기도 하니 분위기가 더 따뜻하다. 손님들 역시 운동하는 길에 러닝복 차림으로 드른다든지 강아지와 산책하며 같이 찾아온다든지 친구를 만나 같이 아침 혹은 점심을 먹으며 둘러본다든지 일상의 한 부분 같은 편안함을 준다. |
|
|
타마헤레 마켓 전경. 가족, 친구, 이웃끼리 삼삼오오 모여 동네 마실을 나온듯한 풍경을 연출한다. 강아지도 함께 동반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
|
|
금붕어는 물론 금붕어 그림을 그린 작은 광고판도 귀엽다. |
|
|
내가 셀러로 참여한 ‘타마헤레 마켓(Tamahere Country Market)’은 해밀턴 외곽에 있는 타마헤레 지역에서 열리는 마켓으로, 매달 셋째 주 토요일에 열린다. 음식이 주를 이루는 다른 마켓과 달리 이곳은 예술, 공예 제품이 절반을 차지한다. 마침 한국에서 판매할 목적으로 인쇄한 엽서들이 있었고, 주로 헌틀리, 해밀턴 인근에서 찍은 사진들이라 셀러로 참여가 가능했다. 마켓은 8시 30분부터 1시까지 진행되는데, 셀러들에게는 7시 30분까지 와서 자리를 세팅하라고 연락이 왔다. 새벽 일찍 출발해 부랴부랴 테이블을 펼치고 엽서를 정리하는 동안 남편은 로이를 데리고 아침을 먹일 겸 부스를 돌아다녔다. 7시 30분에 준비를 마친 셀러들은 손님이 오기 전까지 다른 부스를 찾아다니며 안부를 나누고 서로의 물건을 구경하며 관심을 가졌다. 남편은 로이가 고른 도넛과 소시지를 손에 들고 내게 돌아와, “사람들이 스몰토크를 엄청 해. 물건에 대한 얘기보다 먼저 스몰토크를 해야 부담스럽지 않은 거 같아.”라고 말했다. 엽서에 대한 설명만 잔뜩 생각해 왔는데, 스몰토크라니…
다행히 바로 내 뒤에는 스몰토크의 귀재가 있었다. 조이스는 핸드메이드 귀걸이를 판매하고 있었는데, 옆집에 사는 이웃과 함께 왔다고 했다. 옆에 나란히 앉은 이웃은 집에 있어봤자 할 일이 없어서 그보다 도와주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해서 따라왔다며 웃으며 말했다. 손님이 없을 때는 둘이서 수다를 떨고 음식을 나눠먹는 모습이 참 편안해 보였다. 손님이 찾아왔을 때에도 그 편안함을 유지했는데 자리에서 일부러 일어서거나 태세를 바꾸지 않았다. “날씨가 정말 아름답지! 정말 버라이어티 한 마켓이지 않니? 맛있는 냄새가 나는 거 같네. 점점 배고파져.” 등등 날씨 얘기에서부터 마켓에 대한 칭찬에 이르기까지 손님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어갔다. 엽서를 보러 놀러 온 친구가 내게 마카롱을 선물해 줘서 조이스에게 나눠줬는데, 그녀는 마카롱까지 스몰토크로 이어갔다. “난 지금 행복해. 단 걸 먹고 있거든.”이라고 말하며 눈을 마주친 손님이 부담스럽지 않게 구경할 수 있게 해 줬다. 정작 나는 긴장이 돼서 마카롱을 먹을 입맛을 잃었는데, 여유로운 다른 셀러들을 보며 마실 나온 듯 참여하는 것이 비결인가 싶었다. |
|
|
셀러로 참여한 나와 로이. 즐겁게 도넛을 먹는 로이 덕분에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
|
|
직접 만든 은 액세서리를 판매하는 제인 씨. 매달 정기적으로 마켓에 참여하는 셀러다. |
|
|
마켓에는 우리 말고도 한국인 셀러가 한 명 더 있었다. 은으로 만든 주얼리를 디자인하고 만드는 제인 씨였는데, ‘letter to me’라는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녀는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며 새로운 제품의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고 했다. 한 번은 할머니가 손녀의 이름이 새겨진 목걸이를 만들고 싶다고 물어와서 이니셜이 새겨진 목걸이 시리즈를 만들었고, 뉴질랜드스러운 제품을 선물하고 싶다는 말을 듣고 뉴질랜드 새 팬테일(Fantail)을 떠올리게 하는 목걸이를 만들었다. 제인 씨는 타마헤레 마켓이 ‘커뮤니티’ 같다고 했다. 매달 참여하다 보니 늘 같은 자리를 배정받는데,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찾아오는 손님을 만날 때 반갑다고 했다. 어떤 손님은 언니에게 선물하려고 하는데, 네가 만든 액세서리가 생각났다며 제품을 기억했다가 다시 찾아오기도 했다. 늘 만나는 셀러들끼리는 서로의 좌판에 찾아가 근황과 새로운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만큼 친하다. 확실히 타마헤레 마켓은 파머스 마켓 그 이상의 끈끈함이 있었다.
처음 참여한 나도 이곳이 커뮤니티 같다고 느끼게 됐는데, 시작은 나의 허술함으로 비롯됐다. 마켓 진행팀에게 자리배치표를 메일로 받았는데, 나무로 둘러싸인 자리였다. 나무 그늘이 있을 테니 파라솔은 없어도 되겠지 하고 테이블과 의자만 덩그러니 들고 갔는데, 막상 가보니 나무가 생각보다 작았고 그마저도 꽤 떨어진 자리였다. 정오가 되어갈수록 너무 뜨거워져서 곤혹스러웠다. 우리를 본 옆 셀러가 안 쓰는 파라솔이 있다며 가져다줬고, 그 덕에 시원하게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의 힘듦을 자신의 일처럼 생각해 주는 마음을 느끼며, 왜 셀러들이 이곳이 커뮤니티 같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마켓에 오는 손님들도 가족들과 함께, 강아지와 함께 찾아와 느긋하게 머물렀다. 로이에게 강아지를 만져봐도 된다며 이름과 나이를 소개해주기도 했다. 서로를 동네 주민 만나듯 편안하게 대하는 분위기가 좋았다. 막 걸음마를 뗀 아이가 천천히 걸어가도 누구 하나 보채지 않고, 동물과 함께 있는 풍경이 자연스러운 곳. 상대방이 편안한 모습일 때 내 마음도 덩달아 편안해지는 것을 느끼며, 자연스럽게 배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준비해 간 엽서는 얼마 팔리지 않았지만(자릿세를 내는 정도) 다른 셀러들을 알아갈 수 있어서 즐거웠고, 로이는 도넛과 팝콘, 소시지를 먹으며 기뻐했고, 우리 셋의 추억이 하나 더 생겼으니 완벽한 하루였다. |
|
|
파머스 마켓에서는 로컬 생산자와 창작자를 직접 만날 수 있어 좋다. |
|
|
막 걸음마를 뗀 아이가 천천히 걸어가도 누구 하나 보채지 않는 여유로운 분위기, 이 안점감은 이곳에 머무르는 모든 이들에게서 비롯된다. |
|
|
마켓에서 판매했던 엽서가 궁금하시다면!
포셋은 '엽서도서관'이라는 콘셉트로, 입구부터 모든 진열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엽서'만을 소개하는 곳입니다. 제 엽서는 오프라인 공간에서는 포셋 연희동 지점에서, 온라인 공간에서는 포셋 홈페이지(Poset.co.kr)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아래 포셋 페이지 에서 "클로서, Closer, 뉴질랜드"를 검색해 보세요. 엽서의 앞면에는 필름카메라로 찍은 뉴질랜드의 모습을, 뒷면에는 사진에 담긴 이야기를 한국어와 영어로 수록했습니다.
주소: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증가로 18 3층 305호 포셋(연희동 92-18)
|
|
|
공지
뉴스레터 <다정한 시선>은 이번 호부터 월간으로 바뀌게 됩니다. 매달 마지막 주 월요일에 글과 사진을 엮은 에세이가 발송될 예정입니다. 언 1년만에 인사드린 뉴스레터를 반가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
오늘 다정한 시선 어떠셨나요? 구독자님의 의견이 궁금해요!
구독을 원치 않으실 경우, 아래 수신거부를 눌러주세요. 감사합니다. |
|
|
발행인 장혜영 | 발신자 이메일 주소 donotforgetus2009@gmail.com | 수신거부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