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의 나는 너무 작아서 작은 것들에 마음이 간다. 도로가에 단풍나무 싹이 틔어난 것을 보고 저대로 두면 분명 죽을 텐데 싶어 계속 눈길이 갔다. 결국 삽을 들고 와 고이 퍼서 작은 화분에 옮겨 심었다. 어딘지도 모를 땅으로 날아와 뿌리를 내리고 힘차게 싹까지 틔운 그 씩씩함을 지켜주고 싶어서였을까. 닮고 싶어서였을까. ‘작은 단풍나무’라는 뜻으로 ‘소풍(小楓)’이라고 이름도 지었다. ‘소풍’이에게 물을 주며 ‘오늘 하루도 소풍온 듯 살자’ 하고 마음으로 말했다.
타국에서 산다는 것은 도로가에 홀로 있던 여린 나무처럼 낯설고 위태롭고 삭막한 삶이다. 나를 지켜주던 울타리를 떠나 “어디서 왔냐?”는 말을 평생 들어야 하고, 다수의 입장이 아닌 소수의 인종이 되어 어딜 가든 눈에 띄는 사람이 된다. 특히나 코로나 이후 동양인에 대한 편견이 심해지면서 손짓 몸짓을 총 동원해 나를 약 올릴 려고 작정을 하는 철없는 아이들을 만났다. 내가 반응을 하지 않고 무시한 채 걸어가자 관심을 끌려고 돌멩이를 던지며 욕설을 내뱉기도 했다. 나도 똑같이 소리를 질러보기도 하고, 집에 돌아와 서럽게 울기도 했다. 낯선 환경보다도 이방인이라는 처지를 받아들이는 것이 어려웠다. 난생처음으로 ‘조롱, 무시, 억울함’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크게 와닿았다. 이전엔 이해하지 못했고 위로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정말 아팠겠다’고 마음으로 느끼며 같이 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낮은 자리를 찾아 몸을 숙이고 간절히 기도하며, 다른 이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에 감사했다.
겪어보니, 어떤 일이건 좋은 점과 힘든 점이 함께 있었다. 국경을 넘어서 좋은 점은 새로운 세계에 도달했다는 것이었다. 그 세계는 나를 어린아이로 만들었다. 휴대폰을 개통하고, 은행계좌를 여는 아주 일상적인 일들도 버벅거렸지만, 어린아이의 시선을 되찾기 좋은 위치였다. 주황색과 검은색이 섞인 화려한 색감의 나비만 봐도 좋아서 쫓아다니고, 처음 보는 음식들을 궁금해하며 새로운 맛을 알아가고, 새끼 양이 미소 짓는 것을 보고는 탄성을 질렀다. ‘우와, 동물도 웃을 수 있구나. 우와, 비트루트를 넣어서 케이크를 만들 수도 있네. 우와, 이름이 러비(Lovey) 라니 정말 귀엽다.’ 그렇게 감사와 감탄을 되찾아 갔다. 뉴질랜드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간다는 현실을 마주하면 숨이 막혔지만, 소풍처럼 오늘 하루를 생각하면 숨이 쉬어졌다. 숨이 트이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오늘 감사했던 일 하나를 찾는 것, 나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 온 한 사람을 기억하는 것. 하나부터 시작하면 뭐든 좀 쉬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