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 집 쌍둥이네는 닭 10마리를 키우고 있다. 닭 한 마리 한 마리 모두 이름이 있는데, 내 눈에는 모두 비슷해 보였지만 깃털의 연하고 진한 빛깔이 다르다며 이름을 부르며 닭들을 소개했다. 처음 쌍둥이 자매를 만난 건 집 앞에 좌판을 펼쳐놓고 계란 한 판과 아보카도 한 바구니를 단돈 2불(약 1,600원)에 팔고 있는 걸 보고 단골이 되면서부터다. 시중가로 계란은 12불, 아보카도는 10불은 족히 내야 하는데, 2불이라니 횡재나 다름없었다. 뒤뜰에 닭들을 풀어놓고 프리 레인지(Free Range)로 키우기 때문에 매일 아침 정원 곳곳에 숨겨진 계란을 찾고 모으는 일이 쌍둥이 자매의 담당이었다. 이렇게 조금씩 용돈을 모아서 자매는 자신들이 원하는 물건을 살 때 보탠다고 했다.
뉴질랜드에서는 아이에게 화장실 청소, 설거지 등 작은 일이더라도 역할을 주고 공동생활에 기여를 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경우를 쉽게 본다. 아이를 위한 노트북, 자전거 등을 살 때에도 아주 일부더라도 아이가 돈을 모아서 보태도록 한다. 이렇게만 보면 아이들이 대견한 것 같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부모의 희생과 결단이 있어야 한다. 닭을 키우는데 드는 사료값만 해도 계란 값은 족히 들고, 자주 청소하지 않으면 냄새가 나기 때문에 뒷감당은 오롯이 부모의 몫이다. 아이에게 집안일을 맡길 때에도 완성도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한 번은 친구 줄리네 집을 방문했는데, 줄리는 “화장실은 딸이 청소해서 깨끗하지 않을지도 몰라.”라고 말했다. 8살인 매시가 화장실 청소 담당이라는 것에도 놀랐지만, 자신의 성에 차지 않아도 아이에게 맡길 줄 아는 줄리도 놀라웠다. 어른의 시선으로 볼 때 부족한 부분들이 많이 보여도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것. 아주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기회를 받으며 자라난 아이들은 자립심도 높고 자신에 대한 자긍심도 높아 보였다.
쌍둥이 자매와의 첫 만남. 집 앞에 작은 마켓을 열어 정원에서 주운 계란과 아보카도를 판매했다.
10마리의 닭을 키우고 있는 쌍둥이 자매. 매일 아침 정원에 흩어진 계란을 찾는 것이 이들의 듀티다.
2살 티아의 엄마, 수지는 “실수해도 괜찮아. 실수하면서 점 점 더 잘할 수 있게 되는 거야.”(Mistakes are okay. If something is hard, we can keep trying and we will get better.)라고 항상 격려의 말을 한다. 그녀의 집에 놀러 갔을 때 티아가 스스로 손을 씻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화장실 발받침대를 밟고 올라가 혼자 수도꼭지를 틀고 손세정제를 눌러서 손을 씻는 것이었다. 티아는 스스로 한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손을 씻었는데, 사방으로 물이 튀어서 마친 후에는 꼭 엄마가 바닥을 닦아야 했다. 2살 내기 로이를 키우며 아이가 혼자 하도록 두는 것이 얼마나 수고로운 일인지 알기에, 티아를 기다려 주는 수지가 멋져 보였다. 뒷정리를 하는 것이 귀찮아서 아이의 손에 비누 거품이 남아있는 것이 걸려서 내가 대신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육아까지 빨리 하려고 하지 말자고 나에게 되뇌었다. 알이 부화되기까지 기다리지 않고 알을 깨트려 버린다거나, 나비가 되기까지 기다리지 못해서 번데기를 꺼내 버리는 사람이 되지 말자고 말이다.
뭐든 도와줘야 할 것만 같은 아기들까지도 스스로 하는 것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로이에게 요플레 뚜껑을 까서 주려고 하자 그러지 말라고 통째로 달라고 소리쳤다. 손가락 끝에 힘을 주며 요리조리 귀퉁이를 잡더니 시간이 꽤 걸렸지만 마침내 뚜껑 뜯기를 성공하고 씩 웃으며 뚜껑에 묻은 요플레까지 핥아먹었다. 부모가 아이를 본다고 생각하지만, 그보다 더 유심히 아이가 부모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버지니아 사티어의 <아이는 무엇으로 자라는가> 책에서는 “부모의 가장 큰 숙제는 성심 성의껏 씨앗을 심고 그 씨앗이 어떤 식물로 자라날 것인지 지켜보며 기다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어떤 식물이어야 한다는 고집이나 선입견을 버리고, 싹을 틔워 자라나는 식물이 그 자체로 고유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재판관이 아니라, 발견자 혹은 탐험가가 되어 그 아이의 인생에 함께 하라고 말한다. 슬프게도 남의 아이에게 그러기가 가장 쉽다. 다른 아이에게는 좀 덜 흥분하게 되고 좀 더 기다려주게 되고 좀 더 조심히 대하게 된다.
로이가 처음 붓을 만지며 논 날. 물감을 먹기 바빴지만 스스로 붓을 쥐고 움직이는 걸 재밌어했다.
뭐든 따라 하는 로이는 아기에게 목욕을 시키듯 인형을 씻겨주고, 인형을 그네에 두고는 밀어주곤 한다.
어른들이 청소하는 걸 보고는 밀대를 들고 와 자신도 돕겠다고 한다.
10개월 즈음 로이가 처음 붓과 물감을 만지며 논 날, 빨간 물감을 찍어 종이에 한두 번 묻히더니 입으로 가져가서 쪽쪽 빨았다. 너무 놀라 “안돼!”라고 말하는 나와 달리 옆에 있던 다른 아이의 엄마는 “맛없지? 한 번 맛봤으니 이제 더 먹을 필요는 없겠지?”라며 상냥하게 로이를 타일렀다. 아이를 네 명 키운 그 엄마는 한 번씩 해보는 건 중요하다며 자기 아이도 똑같았다고, 자기 아이는 빗물도 먹고 하도 흙을 먹어서 똥에 흙이 나올 정도였다고 말하며 아이가 맛보고 스스로 판단하게 되는 게 필요한 것 같다고 했다. 아이를 네 명 정도 키우면 자기 아이도 남의 아이 대하듯 쿨해질 수 있는 걸까. 한 편으론 육아를 좀 대충 해야 아이가 건강하게 자란다는 말이 뭔지 알 것 같았다. 육아에서 ‘하는 것’ 못지않게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배우는 요즘이다. 어제까지 아니 오늘 오전까지 못하던 것을 집안일을 하느라 깜빡 못 챙겨준 사이에 하고 있는 로이를 보며 내가 미리 해버렸던 거구나 반성하게 된다. 힘들지만 남의 아이 대하듯 하자고 마음먹는다. 나와는 다른 아이라고, 엄연한 타인이라고. 스스로 넘어지고 스스로 일어서며 자신의 인생의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점 점 더 나는 작아지고 희미해져 가야 한다고.
자신이 키우는 양에게 우유를 주고 있는 아나. 아이는 새끼 양(Pet sheep)을 키우기로 한 자신의 선택에 따라 최선을 다해 돌봐주고 함께 놀아준다.
송아지에게 우유를 주는 8살 애샤. 농장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한 마리부터 애착을 가지고 정성껏 키우는 연습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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