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국으로 옮겨와 살면서 나는 오래 우울증을 앓았다. 거리에서 우연히 만나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을 보면 ‘친구가 있어서 좋겠다’라고 느끼며 외로움이 몰려왔고, 동양인을 비하하며 욕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인생 처음으로 겪어보는 조롱이라는 감정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민자라는 처지에 대한 피해의식도 생겼다. 바빠서 일처리가 느린 가게인데 나를 무시하는 건가, 내가 안 보이는 건가 싶어서 우울해지고, 모두에게 시비를 거는 철없는 10대를 만나도 내가 외국인이라고 얕보는 건가 싶어서 오랫동안 끙끙 앓았다. 결정적으로 내가 마음이 무너져 있구나 느꼈던 때는 약국에서 유통기한이 3일 남은 약을 받았을 때였다. 30일분의 안약을 받았는데 유통기한이 3일밖에 안 남았다니. 다음 날 찾아가 따졌더니 내가 이미 포장을 뜯었기 때문에 환불을 해줄 수 없다고 했다. 이런 일은 한국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인데 문제는 내가 그 일 이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이었다. ‘영어로 뭐라고 말하지’ 도착 전에 내가 할 말을 미리 준비해서 가야 한다는 것부터가 피곤했다. 내가 흥분해서 목소리 톤이 높아지자 약사는 자기에게 큰 목소리로 말하지 말라며 신경질적으로 말했는데, 내가 어쩌다 진상이 됐지 싶어서 눈물이 났다. 그렇게까지 반응할 일은 아니었는데, 그동안 쌓여왔던 이민 생활의 서러움이 갑자기 폭발해서 눈물이 멈춰지지 않았다. 그 약사는 괜찮냐고 물으며 전액 환불은 안되지만 자신들의 잘못도 있으니 절반은 환불해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내게 휴지와 비타민 하나를 건네줬다. 동네 약국을 드나드는 일상 속에서도 내가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구나, 내 감정 회로의 어딘가가 고장 나 있구나 싶었다.
이민을 오고 가장 현실을 마주하는 날은 모순적이게도 생일, 새해 첫날, 크리스마스와 같은 공휴일이다. 가장 행복해야 하는 날이 가장 외롭고 어쩔 줄 모르게 슬픈 날이 되기도 한다. 2018년 뉴질랜드에 도착한 첫 해 보냈던 크리스마스 날이 기억난다. 이방인이라는 걸 실감하지 못하다가 친하게 지내던 이웃 줄리가 무심코 이런 말을 했다. “그 친구도 이곳에 가족이 없어. 너처럼.” 아, 앞으로도 좋은 날에 가족들과 내가 사랑하는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없구나 싶어서 엉엉 울었다. 내가 만난 다른 이민자 친구들도 비슷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홍콩에서 온 K는 이민 온 첫 해는 소셜미디어를 보지 않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소식을 보면 다른 친구들은 여전히 행복한데, 자신만 소외되어 있는 것 같아서 더 외로움을 느꼈다고. 호주에서 온 M은 말레이시아 남편과 결혼해 두 딸을 낳았는데, 아이들을 데리고 나갈 때마다 입양을 했냐는 말을 듣는다고 했다. 이민자의 나라이건만 차별적인 발언을 듣는 건 똑같구나 싶었다. 아르헨티나에서 온 M은 대학에서 음악 관련 학업을 절반 정도 이수했는데 하나도 인정받지 못했다며, 다시 학업을 이수해야 해서 속상했다고 말했다. 우리 모두 용기를 가지고 새로운 땅으로 날아왔고, 또 똑같이 고국을 그리워하며 산다는 것이, 이렇게 다양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똑같이 외로움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놀랍고 또 위로가 됐다.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신이 나에게 딱 한 가지 능력을 준다고 한다면 다른 이에게 공감할 수 있는 성품을 구할 거라고. 공감만큼 큰 위로가 되는 일이 없다는 걸 타지 생활을 통해 깨달았기 때문이다. 커리어를 쌓느라 바쁘게 살아온 탓에 다른 이의 감정을 살피는 일에 소홀했다. 심지어 내 감정도 알지도 못했다. 잘하는 나만 좋아했지, 잘 못하는 나는 생각만 해도 싫었다. 내가 아프거나, 혹은 다쳐서 몸이 불편해진다면 나는 나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싫어할 거라는 생각도 한 적이 있다. 외국인의 처지가 되어 말을 잘 못하는 나, 뚜렷한 정체성이 없는 나, 아웃사이더가 된 나, 멋지지 않은 나에게 적응을 못했던 것 같다. 운전도 잘 못하는 내가, 친구도 별로 없고 정해진 약속도 없는 내가, 무엇보다 직업이 없는 내가 너무 낯설었다. 누군가 내게 직업을 물었을 때 나는 직업이 없다고 답했고, 그녀는 “엄마잖아!”라고 말했다. 엄마도 직업이구나 내 역할을 알아주는 것 같아 감동했었다. 더 이상 나에게 새빨간 매력, 감칠맛 나는 매력은 없지만, 어묵 국물처럼 뜨끈하고 우려낸 멸치처럼 뭉근한 사람이 되어도 좋겠다 싶다. 다양한 삶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함께 아파할 수 있는 공감대가 생긴 것, 소수의 입장에 처해보고, 낯선 환경에 떨어져 본 것. 약해져 보고 우울해져 본 것도, 그래서 어떤 상황이든 ‘그럴 수도 있지, 그런 때가 있지.’ 하고 넘길 수 있게 된 것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 |